도가 학파 핵심은 무위 사상입니다.
무위의 뜻은 인위적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집착해서 화를 부른다고 합니다.
공자가 강조한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부터 '예'라는 것은 없었는데 만들어 놓고 서로 예를 따지고 있는 셈이죠.
본래 아무것도 없는 근원을 따라가는 것이 세상 만물이 자연스레 운행되는 최고 경지라고 합니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죠.
1. 노자, 자율주행차를 타다?
“가만히 있는데 차가 알아서 간다고?”
요즘 자율주행차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핸들을 놓고, 페달도 밟지 않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차가 스스로 도로를 읽고, 판단하고, 멈추고, 달립니다.
테슬라는 핸들도 없앴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노자(老子)가 떠오릅니다.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
‘운전하지 않는 기술’과 ‘행동하지 않음의 철학’ 사이,
왠지 묘한 연결이 느껴지지 않나요?
2.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기
노자는 ‘무위’라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닙니다.
억지로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맡기는 태도를 뜻하죠.
물은 억지로 흐르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막힘없이 흘러갑니다.
노자는 인간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도 비슷하지 않나요?
-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 차량은 센서와 알고리즘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 목적지까지 자연스럽게 인도합니다.
이건 마치 ‘차의 무위자연’입니다.
3. 운전은 통제, 자율은 흐름
일반적인 운전은 통제의 연속입니다.
- 브레이크를 밟고,
- 핸들을 꺾고,
-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반응하고.
운전자는 늘 긴장 속 개입자로 존재합니다.
자율주행차는 이 개입을 줄입니다.
그 덕분에 사람은 풍경을 보고, 음악을 듣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가 하는 일은 없음(無爲)이다. 그러나 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4. 기술의 무위자연?
“기술이 인간을 대신해 움직이는 건 무위일까, 과잉일까?”
노자라면 쉽게 대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어떤 기술이든 삶을 덜 복잡하게 하고, 본래로 돌아가게 한다면
그것이 도(道)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라 여겼을 겁니다.
즉, 운전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 더 깊은 사유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자율주행은 무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셈이죠.
5. 운전 안 해도 되는 삶
핸들을 놓고 나니, 비로소 창밖이 보이고, 음악이 들리고, 생각이 시작됩니다.
자율주행차는 이동의 기술이지만, 노자의 철학으로 보면 멈춤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방향을 바꾸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서도,
우리는 어딘가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노자의 삶입니다.
6. 노자 × 자율주행차
항목 | 노자의 철학 (무위자연) | 자율주행차 기술 |
---|---|---|
핵심 개념 | 무위(억지 없는 흐름), 자연의 도를 따름 | 인간 개입 최소화, 스스로 판단하는 주행 시스템 |
인간의 역할 | 덜 개입하고, 흐름을 따라 존재 | 운전자가 아닌 관찰자 또는 승객 |
삶의 태도 | 비움, 멈춤, 내려놓음 | 핸들, 페달에서 손을 떼고 여유를 가짐 |
목적 달성 방식 | 억지 없이 흘러가며 목적지에 도달 | 알고리즘과 센서로 자율적으로 도착 |
철학적 해석 |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 | “운전하지 않아도 인생은 간다 – 기술이 무위를 배운 셈” |
7. 마무리
노자라면 자율주행차를 타고 핸들을 붙잡기보단,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너는 목적지만 말해라. 나머지는 흐름이 데려간다.”
그리고 속으로 웃었겠죠.
인간의 기술로 기계의 진화도 맞춰지고 실용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편안함도 있지만 터미네이터의 공포(?)처럼 자동화에 대한 윤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건 왜 일까요..?